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예배 - 목사 '설훈'

이슈타임 / 기사승인 : 2020-02-24 08: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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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부터인가 설교 시간에 종종 옆 사람과 인사하라는 설교자의 멘트가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나도 시골교회 담임 시절 예배 분위기를 위해 서로 인사하기를 권했지만 청중의 입장에서 보니 어색한 상황을 맞게 된다.

 

마치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함께 타면 가벼운 인사를 한 채 침묵 속에 수십 층을 올라가야 하는 어색함처럼 어느새 우리는 가까이 살지만 얼굴을 맞대고 말을 주고받는 대면 관계가 점점 힘들어진다. 언제부터인가 지인들과의 대화도 가급적 문자나 카톡이 편하고 모임이나 단체의 논의도 단톡이나 채팅방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익숙하다.이런 현상을 ‘자발적 고립화’라고 부른다.

 

다른 누군가가 내 경계선 안으로 침범하는 것을 불편해하고 방어하게 되는 결과로 여러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키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집단활동은 갈수록 극히 제한적 일 수 밖에 없다.그러나 여전히 대면을 기반으로 한 조직인 학교, 군대, 교회는 아직까진 유지되고 있다.학교와 군대는 국가의 법적 테두리 안에서 유지되고 있다면 교회는 예배라는 대면접촉의 의례참여를 통해 유지된다.

그래서 어느 단체보다도 모이기에 최선을 다해왔고 그것이 믿음의 척도를 가름 짓는 기준이 된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교회의 예배가 위협 받고 있는 상황이다.전염의 공포로 대면 기피가 더욱 극대화되어 다수가 참여하는 예배에 대한 갖가지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당분간 예배모임을 자제해야 한다는 입장과, 이럴수록 믿음의 진위를 판별하는 기회라는 상충된 의견이 분분하다.

 

 

여러 교회에서 예배를 폐하거나 인터넷예배로 대신하는 것도 볼 수 있다. 이때 이런 결정에 거부감을 보이는 분들이 이를 경건하지 못한, 믿음 없는 행위라고 비판하는 것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본질과 비본질을 분명하게 가리면 좋겠다. 

이런 결정을 믿음 없는 행위라고 하기에는 신학적 근거도 신앙적 바탕도 옳지 않다.

 

 

교회당 건물로 지어진 곳에서만 예배했던 교인들에게, 이번 일은 언제 어디서든 예배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고민을 던져 주기에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신앙인으로서 건물에 다 같이 모여 예배하지 않으면, 나는, 우리는 예배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는가 고민해 볼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건물에만 모여서 신앙인 정체성을 드러내는 신앙생활을 계속해 왔다면, 지금은 언제고 어디서든 예배하도록 사명을 받은 신앙인 정체성을 확인하고 훈련하는 시간도 될 것이다. 초대교회가 박해로 여러 곳에 흩어졌고, 그 덕분에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기회를 얻었던 것처럼, 건물 밖에서의 삶도 예배가 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점은 예배에 꼭 모여야 한다거나 모이지 말아야 한다는 어느 극단적 결정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기독교에서 예배와 모임은 정말 중요한 요소이지만 사실 기독교는 제의가 아닌 ‘책의 종교’라는 점이다.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모두 경전을 기반으로 한 책의 종교들이다. 경전을 바탕으로 삶의 의미를 찾고, 관계를 규정하고, 실천의 방향성을 가지게 된다. 예배 역시 경전의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중요한 도구이지만 진짜 알맹이는 텍스트 성경에 있다. 

 

나는 문자 주의나 성서 무오주의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열린 결말을 가진 경전을 통해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다양한 적용점을 찾고 발견하는 기쁨을 원한다. 그러한 풍요로움은 성경책이 있기에 가능했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내가 이렇게 주저리 대는 이유는 너무 모이는 것에 목매지 말자는 것이다. 교회의 공동체성 확보를 위해 주기적으로 모여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스스로 성경을 읽고 생각할 힘을 길러내지 못하는 모임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노파심만 든다. 자주 모여 예배를 통해 공동체성을 확인하고 서로 격려하는 모이는 교회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예베모임에 한 두번 모이지 않는다고 해서 죄를 범한다거나 큰 일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모이는 것에만 초점을 맞췄지 성경의 열띤 대화와 논의를 통한 창조적 발전은 이루어내지 못했다.

 

경쟁하듯 성경을 통독하는 열심은 있지만 정작 성경 내용 자체에 대한 의문이나 생각을 나누는 신자들은 드물다.

 

유명한 설교가의 성경풀이를 앵무새처럼 옮기는 능력은 있으나 본인의 삶의 현장 속에서 성경을 풀어내는 능력을 보여주는 신자들 역시 드물다. 그래서 그런지 교회의 예배가 알맹이 없는 형식만 남아버린 박제된 제의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현 상황에서 예배 빠지면 안된다고 호통치거나 예배모임을 자제해야 한다고 호들갑 떨기 보다는 성경을 바로 알고 바로 실천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호통과 책망이 더욱 절실한 시대인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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