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숙의 세상돋보기] 나만 몰랐던 노래, 다시 불려져서는 안 될 노래

강미숙 / 기사승인 : 2022-01-14 04: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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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강미숙= 나만 몰랐던 노래, 다시 불려져서는 안 될 노래

멀고먼 앨라배마 나의 고향은 그곳
벤조를 매고 나는 너를 찾아왔노라
떠나온 고향 하늘가에 구름은 일어
비끼는 저녁햇살 그윽하게 비치네
(후렴) 오! 수제너여 노래부르자
멀고먼 앨라배마 나의 고향은 그곳

미국 민요의 아버지라 불리는 스티븐 포스터가 작곡한 <오! 수제너>라는 노래다. 폴카리듬이 경쾌해서 부를 때마다 왠지 기분이 좋아지곤 했던 이 노래는 전 세계로 퍼져나가 가사를 바꿔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아주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이 노래를 얼마 전 평창 진부가 고향인 친구를 통해 다시 듣게 되었는데 원곡과는 완전 딴판이어서 처음엔 <오! 수제너>인지도 모르고 들었다. 얼마나 신나게 부르는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가사와 리듬의 조합이 어색하지 않게 느껴지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김일성 똥구멍을 갈기갈기 찢어서
정일이 생일날에 덴뿌라나 해주자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똥구멍을 갈기갈기 찢어서 덴뿌라를 해먹자는 노랫말에 이승복의 입을 찢어죽였다는 선전이 오버랩되어 무척 기괴하게 들렸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진부 산골짜기에 살았다는 동갑내기 친구는 친구들과 고무줄 놀이를 하며 이 노래를 불렀다고 했다. 그리고 어제 원주가 고향인 또다른 동갑내기 친구에게서 자기도 어릴 때 숱하게 부르며 놀았던 노래라는 이야기를 듣고 의아했다. 강릉은 무장간첩사건이 빈번해 반공에 유별난 지역이었는데 난 오십 평생에 처음 듣는 노래였던 것이다. 이승복 기념관이 있는 진부 산골짜기의 특성인가 했는데 원주에서도 즐겨 부른 노래라고 하니 같은 시대를 살고도 경험치가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놀라웠다.

친구들의 이름을 넣어 부른 소절은 지역마다 조금씩 달라서 ‘김정일 생일날’이 되기도 하고 ‘모택동 생일날’이 되기도 했단다. 상상이 되는가, 열 살 안팎의 여자 어린이들이 김일성, 김정일, 모택동을 신명나게 부르며 팔딱팔딱 고무줄을 넘는 모습이. 도대체 그시대 어른들은 우리들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가.

반공 웅변대회, 반공 포스터 그리기 대회, 반공 글짓기 대회, 이 반공 3종 세트는 최소한 40대 후반이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것이다. 나도 반공 포스터 그리기나 반공 글짓기 대회에서 몇 번 상 받은 건 기억나도 내용은 전혀 기억에 없으니 국민학생이 쓴 반공글짓기라는 게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지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100미터도 넘은 것 같은 학교 복도에 전시된 반공 포스터에는 남북이 손잡는 그림보다 험악한 표정을 한 뿔 달린 빨간 얼굴이 더 많았다. 내가 유난히 아둔한 탓인지 <지금 북한에서>인가 하는 TV 프로그램에서 북한 사람과 평양의 거리를 보기 전까지 북한 사람은 빨간 얼굴에 뿔 달린 사람으로 상상하곤 했던 것이다. 북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일종의 문화적 충격은 꽤나 강렬했다.

탈냉전과 남북화해무드를 타고 방북한 89년 임수경의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 참가 전후로 북한 바로알기 운동이 있었다. 그리고 같은 해 평양을 방문했다 국가보안법 혐의로 복역한 황석영 작가의 방북수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 등이 우리가 북한에 대해 있는 그대로 이해하게 된 계기였다. 멈춰서긴 했지만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이 가동된 경험도 있고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과 도보다리에서 담소를 나누는 장면을 목격한 지금은 상상도 하기 힘든 과거지만 당연한 것이 당연하게 된 것은 많은 사람들의 고난과 희생을 제물로 바친 결과였다.

문재인 정부의 큰 공적 중의 하나는 재임 기간 동안 북한과의 군사적 긴장이 없었다는 점, 비록 북핵문제가 타결되지는 못했지만 종전선언에 바투 다가섰다는 점일 것이다. 지난 5년동안 우리는 전쟁 불안은커녕 얼마나 설레고 환호했던가. 평화는 평화로운 시절에는 자각하기 어렵다. 군사적 긴장도가 높아지고 갈등이 고조되면 비로소 그동안 얼마나 평화로웠는지 깨닫게 되는 것이다.

종전선언이 목전에 있는 지금 지난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일군의 행동들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계획적으로 보인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멸공 일베놀이와 윤석열을 위시한 국힘당 인사들의 패러디는 주거니 받거니 하며 점점 강도를 높이며 일맥이 상통한다. 윤석열은 지난해 말 주한미국상공회의소 간담회에서 “현 정부가 굉장히 중국 편향적인 정책을 썼지만 한국 국민들 특히 청년들 대부분은 중국을 싫어한다. 과거엔 그렇지 않았는데 중국 사람들, 중국 청년 대부분이 한국을 싫어한다”고 발언했다.

뒤이어 정용진이 지난해 말 소셜미디어에 ‘# 멸공’을 올렸고 두 차례 삭제조치 되자 올해 초에는 시진핑의 사진과 함께 ‘# 멸공’을 올렸다. 지난 1월 12일, 서울외신기자클럽 기자간담회에서 윤석열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종전선언에 반대한다는 발언을 했다. 그사이 정용진의 멸공놀이는 계속되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 윤석열을 위시하여 나경원과 김진태, 최재형 등 국힘당 정치인들의 멸공 챌린지가 이어졌다. 그리고 급기야는 북한 미사일 대응책으로 선제타격을 주장했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준비하는 과정이 포착되면 북한 본토를 선제타격하자는 것이다. 이들이 보여준 일련의 행동과 발언은 마치 계획된 것처럼 점층적으로 수위를 조금씩 올려왔음을 의심할 만하지 않은가.

국민의 의식수준이 높아져 색깔론이나 이념논쟁이 먹힐까 싶지만 불안심리만큼 취약한 것도 없다. 공작정치에 능한 보수진영에서 선거가 어려울 때마다 전통적으로 사용해온 선거전략이 북풍공작이라는 것은 세상이 다 알지만 매번 긴장하게 되는 이유다. 그리고 이는 일본 극우세력이 난관에 부딪칠 때마다 북핵위협을 빌미로 삼아 자주 써온 방식이기도 하다. 이번 대선에 있어서도 국힘당과 일본 극우세력의 공조는 익히 짐작되는 바이니 모종의 음모가 오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멸공’이라니, 열 살 전후의 여자 아이들이 천진하고 발랄하게 “김일성 똥구멍을 갈기갈기 찢어서”를 노래하던 시절의 낡은 유산이 아니던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치며 죽어간 이승복 오빠를 본받겠다고 이 연사 소리 높여 외칩니다!”라며 고사리같은 손을 칼손을 만들며 가슴을 활짝 펴고 외치게 만들었던 시대의 낡고 해묵은 논리를 소환한 그들의 진짜 저의가 무엇일까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념이 빛바랜지 오래인 21세기에 반공을 넘어 승공, 승공을 넘어 멸공이라니, 벌써 보름이 넘는 기간 동안 전파를 타고 흘러다닌 멸공의 횟수는 수백 수천회가 넘는다. 무엇이든 처음엔 화들짝 놀라지만 자꾸 듣다보면 익숙해지고 처음의 문제의식은 희석되기 마련이다. 내가 얼마전 폴카리듬의 <오! 수제너>의 가락에 맞춰 김일성 똥구멍 운운하는 노래를 들었을 때의 충격이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달파멸공이나 앞글자 따기 장보기로 희화화시키는 저들의 작난에 장단 맞추는 듯한 대응도 사실 마뜩찮다. 이런 것은 패러디나 놀이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되는 일이지 않나.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자신의 인스타에 신세계그룹이 운영하는 이마트에서

장을 보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올렸다. (사진=윤석열 후보 인스타그램)


87년 6월 항쟁의 산물인 대통령직선제에 따른 87년 12월 13대 대통령 선거를 18일 앞두고 탑승객 115명 전원이 사망한 대한항공 폭파사건이 발생했고 선거가 있는 날인 1987년 12월 16일은 폭파범으로 지목된 김현희씨가 압송되어 공항에 들어온 날이었다. 1997년 15대 대통령선거 직전 한나라당 후보 이회창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청와대 행정관 등 일명 ‘총풍 3인방’이 북한측 인사를 만나 휴전선 인근에서 무력시위를 해달라고 요청한 총풍사건이 있었다. 의혹으로 끝난 칼기 폭파사건과 달리 이 사건은 의혹이 아니라 사실임이 드러나 국가보안법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사건이었다. 저들에게는 한반도의 평화는 관심밖이라는 것, 북한과의 적대관계를 이용해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고자 하는 유전자가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음을 또다시 확인하게 된다.

리스크를 불사하고 철없는 일베놀이를 일삼는 대기업 오너와 막강한 마이크를 쥔 위험천만한 후보, 그리고 이를 교묘하게 확산시키는 언론. 이들 트로이카가 연일 화제를 주도하는 멸공 프레임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종전선언 뿐이다. 북한도 지금이 아니면 자신들의 공화국이 활로를 찾기 어렵다는 것을 직시하고 한반도 평화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 될 종전선언. 그동안의 평화무드에 잊고 지냈지만 뜸들이는 밥에 재를 뿌리겠다는 저의로 보여지는 냉전이라는 구시대적 논리가 지구상 유일하게 남아있는 곳이 한반도라는 것을 자각하게 만들어 주었으니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기 짝이 없다. 덧셈이 아니라 뺄셈, 나눗셈의 정치를 하는 저들과 한 하늘을 이고 산다는 게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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