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남북이산가족상봉, 恨 풀기 위한 향후 과제는

곽정일 / 기사승인 : 2018-08-21 10:3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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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중국 양안(兩岸) 사례에서 참고 필요
유연성과 지속성 통해 정례화 발판 마련해야
 지난 20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이산가족 상봉 모습. <사진=연합뉴스TV 갈무리>
(이슈타임)곽정일 기자=지난 20일 시작된 이산가족 상봉장은 눈물바다였다. 금강산호텔에서 65년 만에 만난 가족들은 단체상봉장에서 반가움에 서로 부둥켜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통곡했다.

하지만 이번 상봉에선 북측의 자녀와 만나는 이들이 7명이며 형제·자매와 재회하는 이들이 20여 명뿐이다. 이산가족당사자가 고령화로 사망자가 늘면서 대부분은 조카 등 3촌 이상의 가족을 만나는 이들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상봉의 기회를 갖지 못하고 애태우는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가 남측에만 5만 6000명이 넘는다"며 "최근 5년 동안 (이산가족) 3600여명이 매년 돌아가셨고 올해 상반기에만 3000명 넘게 세상을 떠났다. 이제 그분들의 기다림이 더이상 길어져서는 안 된다"고 대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독일과 중국-대만…다른 체제 간의 이산가족 교류 

우리와 비슷한 사례로 독일과 중국-대만의 이산가족 교류가 있다.

독일의 경우 지난 1961년 베를린장벽의 설치로 동독에 가족들을 남겨두고 일자리를 찾아 서독에 넘어온 가족들이 모두 이산가족이 됐다. 

동독과 서독은 체제와 이념으로 분리됐어도 ▲ 이산가족 구성원에 대한 상봉 허용 ▲ 1972년 교통조약 체결 이후 동독, `잘 아는 사람들`방문 허용 ▲ 서독 방문 희망 주민 선정 시 동독의 연금수령자 우선순위 선정 및 서독 이주 승인 등을 통해 지속적이고 유연한 이산가족 교류 정책을 유지했다.

동독이 이 같은 유연한 입장을 취한 배경에는 자유왕래 활성화를 위해 서독 정부가 파격적으로 재정적 지원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중국과 대만의 경우 지난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과 동시에 대만으로 건너온 중국인은 총 60만 명으로 추정되며 후손을 포함해 중국에 친인척을 두고 있는 대만 이산가족 수는 2~3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지난 1981년 중국이 대만에 이산가족 상봉을 제의하면서 중국인의 대만 방문이 원칙적으로 가능하게 됐다. 이어 1984년 중국이 무력을 통한 `대만 해방`을 포기하고 1987년 장징궈(蔣經國) 당시 대만 총통이 계엄법을 폐지하면서 인도주의 차원에서 중국에 있는 친척 방문을 공식 허용했다.

대만 주민의 대륙방문 숫자는 2012년 말 기준으로 총인원 7163만 780명에 이르렀다.

◇ 유연성과 지속성이 핵심, 면회소 주변 활성화 통한 관광 연계 필요

독일이나 중국-대만 사례에서처럼 이산가족 상봉정책은 `유연성`과 `지속성`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 의견이다.

이승현 정치행정조사실 외교안보팀 입법조사관은 "독일이나 중국양안(兩岸, 중국과 대만)사례에서처럼 이산가족 상봉 정책은 유연성과 지속성이 필요하다"며 "인도주의적 차원으로 바라보고 정치문제와 이산가족 상봉문제를 분리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인적교류에 불안감을 가진 측이 교류 형식과 절차를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 조사관은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를 위해 ▲ 전면적인 생사·주소 확인 최우선 추진 ▲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 상시 운영 및 규모보다는 횟수 매월 2회 이상 증대 ▲ 이산가족 면회소 추가 설치 및 북한지역 관광 연계한 고향방문 추진 등을 강조했다.

그는 "정부는 이산의 고통을 완화하고 남북화합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하는데 최우선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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