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전 북한서 떠내려온 황소…자손 100여마리 남기고 떠난 사연

박사임 / 기사승인 : 2016-01-03 12:5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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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통일의 소' 2006년 사망, 유골 김포 두레문화센터에 보존
황소 [사진=연합뉴스]

(이슈타임)박상진 기자=겨울 한파가 기승을 부린 1997년 1월. 나룻배 한 척 없는 차디찬 한강 한가운데 비무장지대에서 '황소 구출 작전'이 펼쳐졌다.

해병대 청룡부대 장병 8명과 수의관 1명이 고무보트 3대에 나눠 타고 한강 하류에 있는 무인도인 경기도 김포시 '유도'에 진입했다.

해안에 고무보트를 대자 10여m 떨어진 갈대밭에서 풀을 뜯는 황소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지뢰를 밟아 왼쪽 발목에서는 고름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비쩍 말라 몸무게는 300㎏이 채 되지 않은 듯했다.

해병대원은 즉시 마취총을 발사했다. 앙상한 몸체가 힘없이 '푹'하고 옆으로 쓰러졌다.

이 황소가 유도에서 처음 발견된 건 1996년 8월 하순이었다.

김포시와 국방부는 그해 여름 중부 지방의 집중호우로 홍수가 나면서 북한에서 떠내려 온 것으로 추정했다. 북한쪽에서 아래로 흐른 유도 인근의 해류를 근거로 들었다.

무인도에 홀로 남은 이 북한 황소는 겨울이 되자 제대로 먹지 못했고 점차 야위었다. 결국 김포시와 군은 황소를 무인도에서 데리고 나와 사육하기로 결정하고 구출 작전을 벌였다.

육지로 나와 마취에서 깬 황소에게는 '평화의 소'라는 이름이 붙었다. 남북 평화통일의 상징이 되라는 의미였다. 체중도 500㎏까지 불어났다.

이듬해인 1998년에는 어여쁜 '남한 신부'를 맞았다. 제주도의 한 축산인이 기증한 360㎏짜리 암소 '통일염원의 소'와 부부의 연을 맺고 혼례를 치렀다.

김포 농업기술센터(당시 농촌지도소) 내 99㎡(30평) 크기의 축사에 신혼살림을 꾸린 두 부부 소는 모두 7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1998년 11월 4시간의 진통 끝에 태어난 첫째 숫소는 부모의 이름을 각각 따 '평화통일의 소'로 불렸다. 그러나 이후 '평화의 소' 자손들은 뿔뿔이 흩어지며 이산가족 신세가 됐다.

첫째 아들 '평화통일의 소'는 김포 축사에서 어미 소와 함께 길러지다 2000년 어미의 고향인 제주 우도에 정착해 새끼 소 40여마리를 낳았다.

'평화의 소' 2세이자 '평화통일의 소' 형제'자매소 5마리는 일반 한우 사육농가와 한우협회김포시지부에 각각 분양됐다.

막내 암소는 김포 통진두레놀이보존회의 일소로 성장했다.

상당수가 일반 축산농가에 분양되다 보니 '평화의 소'의 자손이 정확히 몇 마리나 되는지는 파악되지 않았다. 최소 100여마리는 넘고 일부는 도축돼 한우로 팔렸을 것으로 추정만 할 뿐이다.

'평화의 소'는 16살의 나이(추정)로 2006년 5월 자연사했다.

2005년 5월 김포시로부터 '평화의 소'를 위탁받아 마지막까지 기른 두레놀이보존회 회원 조문연(59)씨는 그해 5월을 기억했다.

'평화의 소'의 유골은 김포시 통진읍 두레문화센터에 납골 형태로 보존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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