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류진국이 만난 사람-끊임없는 도전과 배움으로 '평생학습' IK 김상문 회장

강보선 기자 / 기사승인 : 2017-11-01 08: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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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이 비범해 보인다면 그것이 얼마나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겠는가"

24일 오후 인천 서구 IK사옥 회의실에서 '평생학습(平生學習)'이라는 제목으로 김상문 회장이 일생동안 보고 느낀 것에 대한 가감(加減)없는 강연이 진행됐다.


김 회장은 "오늘 강의의 제목인 '평생학습'은 제가 만든 재단법인의 이름이기도 하다. 제가 개인적으로 이룩했던 작은 부의 일부분을 재단으로 만들어 후배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려고 나름대로 계획해서 만들었다"고 말했다.


김상문 회장은 자신의 주식으로 평생학습 장학재단 설립은 물론 보은장학회 등 개인적으로 장학금을 전달해 후배양성의 뜻을 다하고 있다.


24일 김상문 회장은 '평생학습'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진행했다.[사진=김담희 기자]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성상근야 습상원야(性相近也 習相遠也)' 공자의 말씀 인용으로 강연을 시작한 김 회장은 공부를 당부했다. 그가 말하는 공부는 성공의 수단이 아니라 고기 한 마리를 얻으면 한 끼 식사밖에 할 수 없지만 고기 잡는 법을 배우면 여러 끼니를 해결할 수 있다는 '득일어단식(得一漁單食)'에 근원한 조언이다.


김상문 회장은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입대한 군대에서 한차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보초를 서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문득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책을 읽기 시작했다. 몰래 품에 책과 손전등을 숨겨 보초 서는 시간에 책을 읽었다. 선임에게 들키는 날이면 몹시 맞기도 했지만 책 읽는 것을 멈추진 않았다.


이러한 김 회장의 학습 열정은 한 회사의 수장(首長)이 돼서도 멈추지 않았다. 사업을 해외로 확장하면서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이순(耳順)을 눈앞에 두고 중어중문과 석사를 수료했다. 국내 150명 밖에 없다는 한자 특급(特級)자격증도 취득했다.


지금도 1년에 100여 권의 책을 읽는다는 김 회장은 회사에도 학습문화를 적용했다. 1년에 60권의 책을 읽어야 하며 한자 3급 합격이 승진 조건일 정도다. 이렇다 보니 책 읽기 싫어 회사를 나간 사람들도 있다는 웃지 못할 속사정도 있다.


김 회장은 경영을 숫자로 이야기하는 것은 잡은 물고기를 숫자로 논의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며 물고기를 잡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力說)했다.


숫자에만 연연하다 보면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우물의 물을 다 퍼내 물고기를 잡는 어리석은 짓도 서슴지 않게 된다. 하지만 물고기를 잡는 법을 아는 사람은 바다로 나가는 법이다.


김상문 회장은 국내 최초로 지하채석 사업을 시작한 선구자다. 예전에는 산에서 채석하고 평지로 만들면 작업이 끝났다. 하지만 고기 잡는 법을 아는 그의 눈에는 더 큰 그림이 보였다. 땅을 파면 산에서 채석하는 돌보다 더 질 좋은 자원이 나올 것인데 아무도 진행하지 않는 것이다.


그 때부터 그는 법제처, 산림청 등을 변호사와 함께 돌아다니며 지하채석과 관련한 법률에 대해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지하채석은 법으로 금지된 것이 아니라 그가 시도하기 전까지 그 누구도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것뿐이었다.


김상문 회장은 남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지하채석 사업을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했다.[사진=김담희 기자]

대한민국 최초로 지하채석 허가를 받은 그는 돌을 꺼내고 그 자리를 토양오염이 안 되는 범위 내에서 순환 골재를 채워 자원을 꺼내고 다시 메우면서 수입이 되는 봉이 김선달 비즈니스 모델이 생긴 것이다.


다이아몬드도 캐내지 않고 깎지 않으면 돌에 불과할 뿐. 이러한 김 회장의 번뜩이는 발상을 실행에 옮길 수 있기까지 또 한 번의 인생전환 계기가 있다.


그의 삶의 멘토인 송석환 조선일보 전 부사장을 만난 뒤부터다. 송석환 전 부사장이 국장인 시절 경북 의성에 출장 간 직원이 장마로 인해 도로가 유실돼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에 직원이 출장복명서에 버스가 다니지 않아 갈 수 없었다고 보고하자 '걸어서는 갈 수 없었는가?'라고 썼다는 일화가 있다. 김 회장도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땐 그냥 웃고 넘겼다. 그러나 송 전 부사장이 과거 속리산에 올라가는 버스가 끊기면 보은읍에서 속리산까지 80리길(31km)을 걸어 갔다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머리를 세게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인생을 이렇게 살 수 있구나. 이분이 했던 말이 윗사람으로써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철저하게 살아왔던 그 과정을 표현한 건 줄 몰랐다. 제가 그때부터 사람이 좀 바뀌었다"


송 전 부사장을 멘토로 끝까지 해보자는 마음가짐을 배운 김상문 회장은 골재사업에 나서면서 실전에 사용하게 됐다.


골재사업을 위한 산이 필요했던 김 회장은 인천의 한 땅 주인을 찾아갔다. 그리고 지금 땅을 좀 주면 벌어서 갚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제안을 했다. 당연히 거절당했고 김 회장은 쫓겨나기까지 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거기서 굴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두 번씩 꼬박 1년 2개월을 찾아갔다. 114번 방문 끝에 결국 땅 주인은 김상문 회장에게 외상으로 빌려줬고 IK의 역사가 시작됐다.


류진국 이슈타임 대표와 IK 김상문 회장이 함께 카메라를 보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김담희 기자]

50이 넘는 나이에 대학원을 진학해 학문의 끈을 놓지 않고 더 나아가 '저우언라이' '소평소도' 등 중국의 문화를 책을 펴내기도 했다. 끊임없는 배움과 도전으로 나날이 괄목(刮目)하는 그는 다음 말을 마지막으로 강연을 마쳤다.


"평범한 사람이 비범해 보였다면 그게 얼마나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였는지를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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