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숙의 세상돋보기] 3촌(村) 4도(都), 또는 3도(都) 4촌(村)

강미숙 / 기사승인 : 2022-01-17 00: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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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강미숙= 시골에 살다보니 산책할 때마다 논밭에 눈이 꽂히고 농작물의 상태에 따라 마치 내 것인 양 웃었다 울었다 하게 된다.  

 

아랫동네에 사시는 우리 동네 이장님은 자녀들을 다 결혼시키고 손주들이 청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부인과 함께 두분이 농사를 짓는다. 땅을 놀릴 수는 없으니 손이 많이 안가는 작물을 심는다지만 그렇다고 손이 안 가는 작물이 어디 있겠는가. 처음 몇 해는 고구마를 여러 박스 사서 나도 먹고 여기저기 보내주기도 했더니 옥수수철이 되면 옥수수를 드시라고 전화가 오고 고구마를 캘때 쯤에도 고구마를 선별해 놓았다고 전화가 온다.

근데 두해 째 빈 땅에 고구마를 심다보니 고구마 수확철이 되면 그 댁 앞을 지나는 게 미안하게 느껴지곤 한다. 나야 재미삼아 심어 먹는다지만 그냥 농민에게서 사먹는 게 맞지 않을까 싶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매년 그 댁에서 건고추를 샀는데 지난 가을에는 고마운 분이 고춧가루를 보내주셔서 그마저도 주문하지 않았으니 죄송한 마음에 땡볕에 일하시는 게 보이면 내 마음 편하자고 음료수를 갖다드리는 것으로 대신하곤 했다. 그러나 솔직히 유기농도 아니고 특수작물도 아니다보니 여기저기 소개시켜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또 내가 아무리 옥수수를 좋아한다 한들 한 철에 서너 자루가 전부이니 이도 근본적인 대책은 못된다. 그러다보니 일하는 것도 힘든데 농민들이 감당해야 하는 현실의 무게가 무거워도 너무 무겁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산업화 이전에는 대부분 가내수공업이었고 당연히 생산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산업화는 분업화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고 이는 노동의 인간소외라는 문제를 야기했지만 생산성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아마도 분업화에 올라타지 않은 유일한 직종이 농업이 아닐까 싶다. 농민은 무엇을 얼마나 생산할 것인가 하는 생산 기획에서부터 생산, 판매 심지어 재고처리까지 다 떠안는다. 한두 가지 품목을 집약적으로 생산하는 기업농이야 가공단계까지 확장되었지만 가족농 중심의 대부분의 농민들은 생산, 판매, 재고처리로 1년 내내 골머리가 아프다.

SNS를 하면서 달라진 것 중의 하나는 쌀이나 과일, 야채 등등을 직거래해서 먹게 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그동안 쌓아온 신뢰를 바탕으로 믿고 먹을 수 있는 양질의 농산물을 살 수 있고 농민들은 조금이나마 현실적인 가격에 가까운 값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스토리가 있는 자신의 농장과 농산물 홍보를 일상적으로 함으로써 농산물에 신뢰와 연대, 상생이라는 메시지를 더할 수 있어 농부와 소비자는 끈끈한 관계가 형성되고 만족도는 껑충 높아진다. 농민들은 생산과정과 농장의 이모저모, 사람사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웃이라는 공감대를 얻고 소비자는 마치 자연의 햇살과 바람과 농부의 애정가득한 손길을 덤으로 사는 충만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전체 농가의 일부에 국한된 이야기다. 사실 농사를 지으면서 SNS를 활발하게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해가 뉘엿뉘엿할 때까지 농장에서 일하다 귀가하면 여성의 경우 가사노동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남성의 경우에도 농기계 수리및 관리나 농자재 확보 등등 또다른 일이 있을 것이다. 국가의 생존에 직결되는 식량을 생산하는 농민들은 과연 최저임금이 보장되는가. 최저임금은 커녕 일년내내 편할 날이 없어 보인다.

많은 농민들이 올해는 무엇을 얼마나 지어야 할 것인가로 고민하고 품질개선을 위해 골몰하며 기껏 최상품을 생산하고도 판매처를 미처 확보하지 못하거나 저장고 시설이 열악하면 더더욱 전전긍긍 한다. 학교급식으로 어느 정도 판매처가 안정적으로 확보된 경우에도 팬데믹으로 갑자기 등교가 취소되거나 하면 유통기한이 생명인 농산물 처리에 벼락을 맞은 듯 패닉상태가 되기도 한다. 그나마 경험과 여력이 있어 원물을 이용한 2차, 3차 생산을 할 수 있는 경우는 나은 편이지만 그런 스마트한 농장은 극히 드물다. 이런 조건을 그대로 두고서는 농민수당도 한계가 있어 보인다. 어떻게 하면 소규모 가족농을 지원할 수 있을까.

농민들은 더 이상 몸을 놀릴 수 없게 되기 전까지는 평생 해오던 대로 땅을 일구고 싶어한다. 문제는 기존방식으로는 판로를 개척할 수 없다는 것인데 그래서 1차 농산물을 생산하고 2차, 3차 생산물로 부가가치를 높이는 일은 마케팅과 홍보에 능한 2030 세대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것에 생각이 미친다. 예를들어 판로를 확보한다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가공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젊은 세대들의 새로운 식문화와 접목시켜 적용해 본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온라인 네트워크에 접속이 자유롭고 새로운 가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보장받는다면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생각해봤다. 시골에는 급속한 고령화로 점점 빈집들이 늘어가고 있다. 몇몇 지자체에서는 빈집을 리모델링하여 도시민들에게 임대한다고 한다. 수도권에서 청년들을 대상으로 시행하고 있는 LH 전세임대처럼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리모델링한 빈집을 공급하면 청년들은 저렴한 1년 선세로 자기만의 시골쉼터를 얻는 것이다. ‘3(4)일은 도시에서 그리고 4(3)일은 농촌에서’처럼 일과 휴식의 조화를 중시하는 2030 세대들이 도시와 시골을 오가며 농민들이 생산하는 농산물이나 기타 지역의 문화예술적 자산을 이용한 유무형의 활동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자연과 벗삼는 삶의 워라벨을 현실화할 수 있지 않을까.

페친이신 홍천에 사시는 현재호 님의 따님은 시골로 내려와 쌀 농사를 짓고 지리산 형제봉 자락에 사시는 토담농가 공상균 님의 따님도 농촌에서의 삶을 살고 있다. 나는 그녀들을 통해 농부이자 2차, 3차 생산자, 혹은 농촌이라는 매력적인 콘덴츠를 활용한 6차 산업 생산자의 미래를 본다. 그래서 그 어떤 청년들보다 그녀들의 미래가 매우 기대된다.

청년 일자리는 대선을 떠나 시대적 화두다. 아무리 저항한다 한들 전통적인 의미의 일자리는 점점 축소될 수밖에 없다. 새로운 모델들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유학까지 하고도 자진하여 캥거루족으로 돌아오는 현상을 타파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젊은 세대는 원래 위험하다. 새로운 발상, 위험천만한 미래에 자신을 걸기도 하고 급진적이고 과격한 면모를 보이는 게 그 세대의 특성이다. 그리고 그 에너지가 사회를 역동적으로 이끌어가는 힘이 된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청년들이 안정적인 직장을 얻기 위해 노량진 학원가에서 몇 년씩이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고시에 청춘을 불사르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질문을 해야 하지 않을까. 평생 서너번은 직업이 바뀔 거라는 청년세대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는 지극히 제한적임은 이제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흔히 읍면 단위는 일 잘하는, 혹은 열정적인 공무원 한사람만 있으면 많은 것을 바꿔낼 수 있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농촌이라고 해서 농민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삶의 양식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변화되어 농촌에 어떤 수요가 있는지조차 제대로 파악이 안 되어 있다고 본다. 관할 지역 농가들의 생산현황과 농가든 비농가든 보조 지원인력이 필요한 것을 조사하여 데이터화하고 빈집을 개조하여 저렴하게 임대, 도시와 농촌을 오가며 연결해줄 수 있도록 청년들을 3촌 4도와 같은 모델로 유치해보는 것은 어떠한가.

몇 년째 농촌지역에 살다보니 농촌을 단순히 농사짓는 곳, 고령화가 어쩔 수 없는 곳이라는 협애한 시각으로 보는 것이 안타깝고 과연 온당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일회성으로 끝나는 농촌지원사업도 더이상 대안이 될 수 없다. 단순한 관광객 숫자놀음에 지나지 않는 오만 곳의 출렁다리, 케이블카 이런 것 말고 농촌이 지니고 있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계발해야 하지 않을까.

농촌이 가진 자연의 아름다움과 역사성, 장소성의 가치를 고부가가치로 재발견할 수 있는 주체는 고정관념에 갇힌 기성세대가 아니라 청년들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지자체이건 10팀 정도만 시범적으로 운영해보면 어떨까 싶다. 아, 그 전에 농촌은 마을 이장의 나이를 마을 농민들 중 최연소자에게 맡김이 어떠한가. 정치든 기업이든 농촌이든 미래세대에게 권력을 넘겨주지 않으면 미래는 없을 수도 있음이다. 모르긴 해도 상상력이 파고들 여지가 없는, 끝까지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비켜주지 않는 지역이 제일 빨리 소멸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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