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숙의 세상돋보기] 창덕궁의 주인이었던 무당이 이젠 청와대를 꿈꾼다

강미숙 / 기사승인 : 2022-01-19 18: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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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강미숙=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명성황후 생가터가 있다. 소박했던 생가터는 일종의 성역화 사업을 통해 몇 곱절 규모도 커지고 공연시설까지 갖춘 복합공간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민자영을 왜 국모로 숭상하고 기려야 하는지 동의하기 어렵다. 국권침탈이라는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 국체를 지키기 위해 악투를 벌이다 왕비로서 기품을 잃지 않고 의연하게 일본 낭인들의 칼을 받은 명성황후의 이미지는 뮤지컬이 만들어낸 허상이다. 예술이 역사를 다룰 때, 픽션과 논픽션 사이 어디쯤 있는 팩션에 있어 어떤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대표작이 뮤지컬 명성황후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조선의 마지막 왕인 고종과 민자영을 제대로 평가하고 있는가. 역사적 인물의 공과가 어떠하든 자신의 지역 출신이면 다 숭상해도 되는 것인가. 


무당에 의탁해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은 민자영이 김건희로 돌아왔다. 시시비비를 떠나 위성을 쏘아올리는 시대에 전지구적, 시대사적 전환기를 이끌어갈 차기정부의 적임자를 선택해야 하는 중차대한 시기에 나라가 온통 무당 얘기로 가득한 것은 그 자체로 비상식적이고 너무 기괴하다.

내가 학창시절 학교에서 배운 고종과 민비는 빙산의 일각이자 미화된 것이었다. 고종과 민비를 바로보지도 재평가하지도 않은 대가를 민비가 시해된 지 127년이 지난 지금 치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할 것 같다. 당신은 근대화된 개인인가?

조선 역사상 정치보복이 일상화되다시피 할 정도로 치열했던 당쟁의 으뜸은 중종시대 사화에 이어 숙종 연간에 일어난 기사환국, 갑술환국일 것이다. 희빈 장씨의 요사스러움과 권력욕에 가려져 있지만 인현왕후 폐위, 복위를 둘러싼 당쟁의 본질은 남인과 서인의 헤게모니 투쟁이다. 인현왕후 폐위로 정비가 되었으나 갑술환국으로 서인이 재집권한 후 다시 빈으로 강등된 장옥정은 오빠 장희재와 함께 궐내 취선당 근처에 신당을 차리고 인현왕후의 죽음을 기원했다.

원인모를 병으로 인현왕후가 죽고 장희빈 남매가 굿을 벌여 왕후를 저주한 일이 발각되자 대노한 숙종은 자진할 것을 명하고 장희재와 무당, 관련된 무녀들을 모조리 죽이고 자진을 거부한 장옥정에게는 사약을 내렸다. 이 사건을 ‘무고(巫蠱)의 옥(獄)’이라 한다. 말 그대로 ‘무당의 독이 빚은 사건’이라는 뜻이다. 이 때에도 세자를 생각해 희빈 장씨의 선처를 간언한 소론 대신들이 있었으니 숙종은 이들 모두를 파직시키고 유배를 보냄으로써 노론의 득세하는 계기가 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권력의 중심에 얼척없는 자들이 있기는 매한가지인 것 같다.

그러나 장희빈은 무당의 힘을 빌어 자신의 복위를 꾀하기는 했으나 무당에게 영혼까지 점령당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숙종 또한 내명부 여인들을 이용해 왕권을 강화하는 냉혹한 군주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말이 좋아 이이제이지 청과 러시아 사이를 전전하다 일본에 국권을 팔아먹고 대 일본제국의 이왕가(李王家)로 편입된 고종과 민자영은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 것일까. 잘 알다시피 민비는 무당에 영혼을 내준 여자다. 민비뿐만 아니라 고종 또한 나라의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점쟁이를 불러 의견을 듣곤 했다고 하니 이게 나라냐 하는 외침이 없었다면 그게 도리어 이상한 일이다.

1882년, 신식군대 별기군과의 차별대우로 불만이 높았던 훈련도감을 비롯한 과거 5군영의 군인들은 13개월이나 밀려있던 녹봉 중 한 달치를 지급받는다. 하지만 쌀은 20%에 지나지 않고 나머지는 모래와 쌀겨로 가득한 쌀가마를 받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임오군란을 일으킨다. 이때 고종은 청에 도움을 청하고 민비는 궁녀로 변장하여 친정이 있던 충주 장호원으로 도망간다. 민비는 그곳에서 박창렬이란 무녀를 만나 12년간 그의 손아귀에서 놀아났다.

민비는 환궁하면서 무당을 데려가 진령군이라는 군호를 내리고 창덕궁에서 함께 살며 대소사를 그녀에게 물어 결정했다. 제사장이었던 단군이래 왕자나 종친, 부마에게 내리는 칭호인 군호를 받은 무당은 아마도 진령군이 유일무이하지 않을까 싶다. 황현이 ‘왕비는 그 무당을 언니라 부르기도 한다’고 할 정도로 민비는 진령군을 맹신했고 왕실을 위한 산천기도와 제사, 심지어는 궁내에서 굿판을 벌이기도 했다. 진령군은 군수, 현감, 관찰사 같은 지방관 임명은 물론이고 나중에는 정부관료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한다. 박근혜와 최순실은 그들을 모델로 삼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빼닮았다.

1883년 창덕궁에 무당이 산다는 게 소문이 나자 진령군은 자신은 관우의 딸이라며 관우를 예우해야 나라에 우환이 없다고 고종을 설득하여 한양 북쪽에 관우의 사당인 북관왕묘를 세우게 하고 옮겨가 살았다. 실제로 이듬해 갑신정변 때 고종이 이곳으로 피신하기도 했다. 진령군이 사는 북관묘에는 벼슬과 부를 얻기 위해 줄을 대려는 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뤘으며 몇몇 고위관료들은 진령군과 의남매를 맺거나 의붓아들이 되어 누님, 어머님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 중 하나가 진령군이 이르기를 ‘금강산 일만 이천봉에 쌀 한 섬과 돈 열 냥씩 바치면 나라가 평안하다’ 했다며 국고를 탕진하게 만든 진령군의 수양아들 이유인이란 자다. 그 힘으로 법무대신까지 지낸 이유인은 진령군의 양아들이자 내연관계였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나라는 백척간두의 위기에 있음에도 1893년 한 해 동안 29차례 왕실의 고사와 다례가 있었고 37회의 연회가 열렸다고 한다. 무당이 왕과 왕비의 총애를 받은 12년간 왕실금고는 막대한 적자로 허덕였다. 조선 국운의 분수령이 된 1894년 2월에는 고종의 생일잔치를 위해 무려 220만냥이나 탕진했다 하니 그들 부부는 무능을 넘어 조선을 위기에 빠뜨린 장본인들이다.

1894년은 그해 봄 수탈과 압제를 거부한 농민들이 동학혁명을 일으키고 파죽지세로 올라와 6월 1일 전주성을 점령했다. 왕이 맞기는 한가 싶게 고종은 청에 파병을 요청하고 연이어 텐진조약을 근거로 일본이 파병했으니 청일전쟁은 고종이 자초한 것이다. 나는 이것을 이이제이라며 대단한 외교술인 양 배운 것이다. 하지만 당시 청의 조선파병은 탄핵안이 가결되어 궁지에 몰려있던 이토 히로부미를 기사회생시켰으니 고종과 민비는 임오군란, 갑신정변 등등 번번이 국권을 외세에 맡긴 원죄를 피할 길이 없다. 만약 국가의 존망을 둘러싼 1894년의 중요한 대소사를 정녕 진령군의 점괘로 결정했다면 하고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지고 피가 거꾸로 솟는다.

이러고도 고종과 민비가 국권을 지키기 위해 악투를 벌인 인물로 숭상함이 옳은 것인가. ‘나는 조선의 국모다’ 하고 당당하고 기품있게 죽어간 자존의 상징으로 민자영을 미화해도 되는 것인가. 전주성을 함락하고도 외세를 물리치는 게 먼저라 하여 눈물을 머금고 전주화약을 맺은 동학농민들이 이 땅의 진짜 주인이었다. 조선을 파탄에 이르게 한 진령군은 청일전쟁 후 단행된 갑오개혁 때 거열형을 선고받았으나 처형했다는 기록은 없고 사라져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모든 책임을 무당에게만 물을 일인가 묻고 싶다. 무당의 사술에 또는 무당을 통해 권력 가까이 가고자 했던 자들에게는 왜 책임을 묻지 않는가. 비선실세 최순실이 문제고 무당에 놀아난 박근혜는 무능이 문제일 뿐 별 잘못이 없다는 천박한 인식이 오늘을 있게 만든 것이다.

신천지 발 코로나가 터졌을 때 압수수색을 하지 말라는 도사님의 신통한 점괘가 있어 압수수색을 하지 않았다고? 이게 2020년의 일이었다고? 제정러시아는 라스푸친에게 놀아나고, 구한말 대한제국은 진령군에게 놀아나고, 2022년 한국의 야당 대선후보는 건진법사에게 아니, 건희법사에게 놀아나는 형국이라니.

이 모든 것은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데서 온 불행이다. 아이들을 붙잡고 물어봐라, 고종과 민비를 어떻게 배우고 있고 어떻게 알고 있는지. 그들 부부가 무당을 총애하여 궁궐에 함께 기거하며 많고 적음을 떠나 국가의 대소사를 무당에게 물어 결정했다는 것을 알고도 고종을 나라를 지키고자 했으나 힘이 없어 치욕을 감내해야 했던 비운의 왕으로, 민비를 당당하고 품위있는 왕비로 그릴 수 있겠는가 말이다. 문득 경복궁 고궁박물관 지하에 전시된 구한말 나라잃은 왕과 왕비가 타고 다녔다는 화려한 자동차가 생각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죄인가.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아직도 '손 없는 날'이 있어 이날은 이사비용의 웃돈을 줘가며 이사하고 가스, 인터넷 설치 주문이 평소보다 더 몰린다. 몸은 첨단시대에 살고 있는데 정신은 여전히 봉건시대에 있는 것은 아닌지,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여전히 제사장이 다스리는 씨족사회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종교를 갖는 것이 자기성찰이 아닌 오직 나만 잘살게 복을 내려 달라는 기복을 위함이 아닌지, ‘내 삶의 주인은 나’가 아니라 점쟁이들은 아닌지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개인주의를 말하고 정의와 공정을 말하는 자신은 근대화된 개인인가.

국민에게 힘이 되겠다고 당명도 국민의 힘으로 정한 야당은 후보가 누군인지 분명히 하라. 박근혜 못지 않은 마리오네뜨 윤석열은 퇴장시키고 기자건 누구건 마음만 먹으면 오빠, 동생으로 찜쪄먹는 실세 김건희 법사를 후보로 내세우고 정정당당하게 대선에 임하라.

 

K시대를 선도하는 국가의 시민인 우리도 국제적인 조롱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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