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터미널', 한 아프리카인 인천공항서 6개월 숙식

권이상 / 기사승인 : 2015-03-08 15: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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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0일 인천공항에 도착한 지 1년 3개월 만에 마침내 정식 난민 심사 신청
한 아프리카인이 인천국제공항 한복판에서 꽤 오랫동안 숙식한 사실이 전해졌다. 사진은 영화 '터미널' 장면.[사진=영화 '터미널' 캡처/드림웍스]


(이슈타임)권이상 기자=영화''터미널'은 고국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귀국할 수도 미국에 입국할 수도 없게 된 한 동유럽인이 뉴욕 JFK공항 환승구역에서 9개월 동안 지내며 벌어진 일을 소재로 삼았다.

그러나 이 황당한 이야기는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비슷한 상황에 처한 아프리카인이 인천국제공항 한복판에서 꽤 오랫동안 숙식했다면 믿을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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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가 이틀간 여객기를 세 번 갈아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한 것은 2013년 11월. 내전이 반복되는 고국에서 입영을 거부하고 도망치듯 떠나온 A씨는 출입국관리 당국에 난민 신청서를 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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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당국은 난민 신청 사유가 부족하다며 A씨의 입국을 불허하고 이튿날 그를 태우고 온 항공사에 송환지시서를 보냈다. 영어에 서툰 A씨가 진술을 오락가락한 것이 치명적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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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하면 금세 구속될 것이라며 버틴 A씨는 항공사가 비용을 지불하는 송환 대기실(출국 대기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천신만고 끝에 변호사를 선임해 기나긴 소송전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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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승구역 내 대기실은 한번 들어가면 출국 전까지는 나올 수 없는 사실상 구금시설이었다. 당시에는 침구조차 갖추지 못했다. A씨는 거기서 치킨버거와 콜라로 끼니를 때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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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소송을 3건이나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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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환 대기실에서 나갈 수 있게 해달라는 인신보호 청구소송, 변호사를 접견할 수 있게 해달라는 헌법소송, 정식으로 난민 심사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행정소송 등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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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인천지법은 작년 4월 대기실 수용이 법적 근거없는 위법한 수용이라며 A씨 손을 들어줬다. 당국은 그제야 A씨를 환승구역으로 나갈 수 있게 해줬다. 무려 5개월 만에 풀려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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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일 후 당국은 면세점 매장을 전전하는 A씨의 입국을 허가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 뒤에는 송환 대기실 내 난민 신청자의 변호인 접견권을 허가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 가처분이 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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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지위를 얻으려는 A씨의 고군분투는 입국 후에도 계속됐다. 모든 소송과 판결이 첫 사례로 기록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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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노력은 서울고법이 올해 1월 말 난민 심사조차 받지 못하게 한 당국의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결하면서 결실을 보았다. 이 판결은 당국이 상고를 포기해 최근 확정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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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지난달 10일 인천공항에 도착한 지 1년 3개월 만에 마침내 정식 난민 심사를 신청했다. 최종 결론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전망이다. 헌재 본안소송 선고도 기다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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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이 규정을 엄격히 따진 데 반해 법원과 헌재는 인권보호의 가치에 집중했다. '가끔은 규정을 무시하고 사람에 집중하세요'라는 영화 '터미널'의 대사를 상기시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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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A씨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온 공익법센터 어필의 이일 변호사는 ''세계 최고 공항'의 이면을 드러낸 사건'이라며 '난민법 시행에 걸맞은 출입국관리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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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에서 영화 '터미널'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사진=ⓒGettyImagesBank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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